
하나님은 왜 당신을 섬기는 사람들의 뿌리를 여러 갈래로 갈라놓으시고 지금의 전쟁 상태를 만드시는 건가? 중동 전쟁 역시 한 나무에서 나온 뿌리들의 싸움입니다. 유럽, 미국, 이란, 사우디, 이스라엘 그 외 중동국가들 역시 하나님의 자손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신잉인들입니다. 그런데 죽을 것을 각오하고 무엇을 위하여 싸우고 있단 말입니까?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데 왜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됩니까? 우리는 하나님은 평화의 하나님이시며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배우고 실천하려 기도 합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다른 길을 걷기도 합니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봉사하고, 함께 교회를 세워 가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의견이 달라지고 관계가 멀어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작은 의견 차이가 큰 갈등으로 번지고, 결국 각자의 길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마음속으로 질문합니다. “하나님은 왜 당신을 섬기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주시지 않고 여러 갈래로 나누어 놓으시는 것일까?” 더 나아가 이런 생각까지 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부러 우리를 갈라놓으시는 것일까?” “왜 하나님을 섬기는데 싸움과 갈등이 생기는 것일까?” “내가 잘못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면 왜 이런 아픔을 허락하실까?”
하나님은 싸움울 좋아 하셔서 성경을 보면 싸움이 계속되는 것인가 지금부터 성경으로 풀어 보겠습니다
이 글에서는 성경 속 인물들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왜 갈등과 분리가 일어나는지, 그리고 그 가운데 우리가 어떤 믿음을 배워야 하는지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1.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싸움을 좋아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할 수 있는 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고 권면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싸우게 하신다”라고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갈등이 발생하는 데에는 인간의 욕심과 자존심, 오해, 상처, 서로 다른 생각 등이 작용합니다.
• 하나님은 미움과 증오를 명령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 하나님은 교만과 분열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 하나님은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고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 그러나 인간의 자유와 연약함 때문에 갈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선한 목적을 이루어 가실 수 있습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갈등을 일으키시는 것과 하나님이 갈등이 발생한 상황에서도 역사하시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2. 아브라함과 롯 ― 갈라짐이 반드시 저주는 아닙니다
창세기 13장을 보면 아브라함과 롯에게 매우 중요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두 사람 모두 많은 가축과 재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땅이 좁다 보니 두 사람의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발생했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나이가 많고 어른이었지만 자신의 권리를 먼저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에게 선택권을 줍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 장면은 신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차지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 아브라함은 싸움보다 평화를 선택했습니다.
•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았습니다.
• 조카 롯에게 먼저 선택하도록 양보했습니다.
• 사람과의 관계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더 신뢰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아브라함과 롯은 서로 다른 곳으로 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실패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롯과 갈라진 이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말씀을 다시 주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사람과의 거리가 하나님의 임재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과 멀어졌다고 하나님과 멀어진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관계의 변화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새로운 길을 준비하시기도 합니다.
3. 아브라함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이기는 것”보다 “양보하는 믿음”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무엇이든 경쟁하려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때로는 봉사의 자리, 인정받는 자리, 영향력 있는 자리를 두고 마음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달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지만 양보했습니다.
왜 그럴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의 미래를 책임지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깊어지면 모든 것을 내가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집니다.
• “내가 반드시 인정받아야 한다”는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 “내가 옳다는 것을 반드시 증명해야 한다”는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 “내가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습니다.
• “하나님께서 아시고 하나님께서 판단하신다”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이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사람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반드시 믿음의 승리는 아닙니다.
때로는 양보했는데도 하나님께서 더 좋은 길을 열어 주실 수 있습니다.
4. 바울과 바나바 ― 믿음의 사람들도 서로 의견이 충돌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5장에는 매우 놀라운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마가를 데리고 갈 것인가를 놓고 크게 다투었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전에 마가가 자신들을 떠났던 일을 생각하여 함께 데리고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이들의 의견 차이가 매우 심각했다고 기록합니다. 결국 바울과 바나바는 서로 갈라져 각각 다른 방향으로 사역을 하게 됩니다. 이 사건을 보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언제나 모든 문제에서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도 서로 의견이 달랐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의견 차이가 생겼다고 해서 무조건 상대방을 믿음 없는 사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갈등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가볍게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갈등에는 상처가 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두 가지를 동시에 배워야 합니다.
• 신앙인에게도 의견 차이는 발생할 수 있습니다.
• 그러나 의견 차이를 미움과 증오로 발전시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 다른 사람의 관점을 존중해야 합니다.
• 내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지 않아야 합니다.
• 갈라진 뒤에도 하나님의 사역은 계속될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5. 놀라운 것은 마가가 훗날 다시 귀한 동역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갈등에서 끝까지 살펴보아야 할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마가입니다.처음에는 바울이 마가를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마가에 대한 평가가 달라집니다. 바울은 후에 디모데후서 4장 11절에서 마가에 대해 매우 귀한 말을 합니다. 마가가 자신에게 유익한 사람이라고 평가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놀라운 희망을 줍니다. 오늘의 실패가 내일의 실패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변할 수 있습니다.
상처 입은 관계도 회복될 수 있습니다. 한때 실망을 안겨 주었던 사람도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에게 너무 빨리 최종 판결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 “저 사람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 “저 사람은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없다.”
• “한 번 실패했으니 끝이다.”
이렇게 단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변화시키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6.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하나의 뿌리를 여러 방향으로 자라게 하십니다
나무의 뿌리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의 뿌리에서 여러 방향으로 뿌리가 뻗어 나갑니다. 겉으로 보면 서로 다른 방향입니다.
그러나 뿌리의 목적은 하나입니다. 나무를 살리고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신앙의 공동체도 때로는 이와 비슷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모든 사역을 담당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말씀을 가르치고, 어떤 사람은 기도하며, 어떤 사람은 어려운 사람을 돕습니다. 어떤 사람은 선교하고, 어떤 사람은 다음 세대를 가르칩니다. 방향은 달라도 하나님을 향한 중심은 하나일 수 있습니다.
• 사명은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 은사는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 섬기는 방법도 다를 수 있습니다.
•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 서로 다른 사명이 경쟁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몸을 설명하면서 여러 지체가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고 가르칩니다. 손과 발의 역할이 다르다고 해서 어느 한쪽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도 모든 사람이 똑같은 일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양성을 통해 하나의 몸을 세워 가십니다.
7. 그러나 “갈라졌으니 무조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균형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서로 갈라졌다고 해서 그것을 모두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말하면 위험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교만 때문에 갈라집니다. 때로는 욕심 때문에 갈라집니다. 때로는 용서하지 못해서 갈라집니다.
때로는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관계가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갈등이 생겼을 때는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 내가 너무 교만하지 않았는가?
• 내가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 내가 인정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싸운 것은 아닌가?
• 내가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 내가 하나님의 뜻보다 내 뜻을 앞세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질문이 필요합니다. 남의 잘못을 찾기 전에 내 마음부터 살피는 것, 이것이 신앙의 성숙입니다.
8. 예수님께서는 분열보다 하나 됨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기도 가운데 중요한 내용 중 하나가 바로 제자들의 하나 됨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서로 하나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은 오늘 교회에도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교회가 성장하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건물이 커지는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프로그램이 많아지는 것도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함께 걸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갈등이 생겼을 때 너무 쉽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나누셨다”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먼저 화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대화해야 합니다.
용서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9.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러 갈래로 보내시는 경우는 언제입니까?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람마다 서로 다른 사명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으로 갔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습니다. 다윗은 왕으로 세워졌습니다. 엘리야는 우상숭배와 싸웠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름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유대인 가운데 복음을 전하는 중요한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에게 주신 사명을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복사하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과 나를 지나치게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 다른 사람의 사명이 나의 사명과 같지 않을 수 있습니다.
• 다른 사람의 속도가 나의 속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
• 다른 사람의 은사가 나에게 없을 수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맞는 자리에서 일하게 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나는 왜 저 사람처럼 쓰임 받지 못하는가?”가 아닙니다.
“하나님, 제가 있는 자리에서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이 질문이 더 중요합니다.
10. 성경 속 믿음의 사람들은 갈등을 통해 더 깊은 믿음을 배웠습니다
성경의 인물들을 살펴보면 고난과 갈등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의 문제를 경험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버림받았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겼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의 믿음 때문에 위기를 경험했습니다.
바울은 수많은 반대와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단순히 “싸워도 괜찮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갈등이 찾아왔을 때 그 갈등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처보다 하나님을 크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붙들어야 합니다.
11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중요한 신앙의 교훈
하나님을 섬기다가 사람과 갈등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세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싸움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갈등은 인간의 연약함에서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화해하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둘째, 갈라짐을 무조건 실패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서로 다른 사명과 환경을 통해서도 일하실 수 있습니다.
셋째, 갈라짐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쉽게 합리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교만과 욕심 때문에 발생한 갈등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필요한 것은 분별입니다.
“이 갈등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시는가?” 이 질문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결론 ― 갈라진 뿌리에서도 하나님은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일부러 싸움을 시키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화평을 원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의 연약함과 서로 다른 생각으로 인해 갈등과 분리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갈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느냐입니다.
아브라함은 롯과 갈라지는 순간에도 싸움을 선택하지 않고 양보를 선택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도 심각한 의견 차이로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사역을 통해 복음의 역사를 계속 이루어 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나무의 뿌리를 여러 방향으로 뻗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뿌리가 향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향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길이 달라도 하나님을 향하고 있다면 우리는 서로 경쟁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섬기는 동역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다시 돌아봅니다.
누군가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쉽게 미워하지 않게 하옵시고.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방을 믿음 없는 사람으로 판단하지 않게 하옵소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한 번 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자 되게 하시옵소서
갈등이 생겼을 때 상대방의 잘못부터 찾기보다 먼저 내 마음을 살피게 하시어,. 혹시 내 안에 교만과 욕심과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지 돌아게 하시옵소서 그리고 할 수 있다면 먼저 손을 내밀어. 먼저 사과하고, 먼저 용서하고, 먼저 축복하게 하옵소서.
지금의 세상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보일지라도 그 모든 길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게 하시고, 우리의 뿌리가 하나님 안에 깊이 내려지게 하옵소서. 그래서 전쟁 중에도 사랑의 열매를 맺고, 화평의 열매를 맺고, 믿음의 열매를 맺어 양보하는 국가가 되게 하시옵소서. 이제는 세계모두가 평화를 이루게 하시고 전쟁을 마무리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