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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공부

요나서와 나훔서의 니느웨 , 하나님의 자비를 경험한 도시, 심판으로 무너진 도시

by 마음과마음 2026. 11. 1.

요나서와 나훔서의 니느웨 — 하나님의 자비를 경험한 도시, 심판으로 무너진 도시
요나서와 나훔서의 니느웨 — 하나님의 자비를 경험한 도시, 심판으로 무너진 도시


성경에는 한 도시를 두고 서로 다른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두 선지자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요나와 나훔입니다. 두 선지자가 주목한 도시는 고대 앗수르 제국의 수도였던 니느웨입니다. 니느웨는 강력한 군사력과 거대한 성벽을 자랑했던 도시였지만, 성경에서는 동시에 폭력과 악행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 도시로 묘사됩니다.

요나서에서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그들의 악행을 경고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나 요나는 그 명령을 피하여 도망칩니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비가 베풀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결국 바다에서 큰 위기를 겪은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심판을 선포하고, 놀랍게도 니느웨 사람들은 왕에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회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변화를 보시고 재앙을 내리시려던 뜻을 거두십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나훔 선지자는 니느웨의 폭력과 교만을 고발하며 그 도시의 멸망을 선포합니다. 요나서가 회개하는 도시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을 보여 준다면, 나훔서는 끝없이 이어지는 폭력과 압제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보여 줍니다.

두 선지자의 메시지는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돌이키는 것을 기뻐하시지만, 악과 폭력을 영원히 방치하지도 않으십니다. 자비와 공의는 하나님의 성품 안에서 함께 드러납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나와 다른 사람에게도 회개의 기회를 허락할 수 있습니까? 다른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진심으로 변화하기를 바랍니까, 아니면 그가 벌을 받는 모습만을 원합니까? 반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를 말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억압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요나와 나훔의 이야기를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다섯 단계로 살펴보겠습니다. 두 선지자의 삶과 니느웨의 역사를 따라가며, 회개와 용서, 공의와 소망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묵상하겠습니다.


1. 발단 — 요나에게 주어진 명령, 원수의 도시 니느웨로 가라

니느웨
니느웨


1) 니느웨는 어떤 도시였습니까?


니느웨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북부, 오늘날 이라크의 모술 인근에 자리했던 중요한 도시입니다. 티그리스강 동쪽에 위치했으며, 앗수르 제국의 역사에서 중요한 중심지로 발전했습니다. 특히 기원전 7세기에는 앗수르의 수도로서 거대한 성벽과 궁전, 왕실의 건축물로 위세를 떨쳤습니다.

앗수르는 당시 근동 지역에서 막강한 군사력을 행사했습니다. 여러 나라를 정복하고 조공을 요구했으며, 이스라엘과 유다 역시 앗수르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북이스라엘 왕국은 기원전 722년경 앗수르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앗수르는 단순한 이웃 나라가 아니라 자신들의 삶과 역사에 깊은 상처를 남긴 강대국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니느웨를 향해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요나서 1장 1~2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일어나 니느웨로 가서 그 도시의 악행을 외치라고 명령하십니다.

요나는 이스라엘의 선지자였습니다. 그에게 니느웨는 단순히 먼 외국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민족을 위협하는 앗수르의 중심지였습니다. 그곳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마음으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명이었을 것입니다.

요나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성경은 처음부터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나서 4장에서 그가 왜 하나님의 명령을 피하고 싶어 했는지가 드러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비로우시므로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면 그들을 용서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요나는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긍휼을 경험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2) 요나는 왜 도망쳤습니까?


요나서 1장 3절은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다시스로 도망하려 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는 욥바로 내려가 배를 구하고, 배삯을 지불한 뒤 다시스로 향하는 배에 올랐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다시스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지만, 요나의 행동에서 중요한 점은 분명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방향과 반대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에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갈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았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면서도 그 말씀대로 행동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용서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기 어렵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도와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내 시간과 재산을 나누고 싶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믿음은 말씀을 아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신앙의 질문: 나는 지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걷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가 편한 길만 선택하고 있습니까?

요나의 이야기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자신의 편견과 감정 때문에 사명을 피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도망으로 계획을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요나의 불순종은 거대한 바다에서 새로운 위기를 맞게 됩니다.


2. 폭풍과 큰 물고기, 요나를 다시 부르시는 하나님

요나의 불순종은 거대한 바다에서 새로운 위기를 맞게 됩니다.
요나의 불순종은 거대한 바다에서 새로운 위기를 맞게 됩니다.

1) 바다에서 시작된 위기


요나가 배에 올랐을 때, 하나님께서는 바다에 큰 폭풍을 일으키셨습니다. 파도가 거세게 몰아치자 배는 부서질 위험에 놓였습니다. 선원들은 두려워 각자 자기 신에게 부르짖으며 배를 가볍게 하려고 짐을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배 밑창으로 내려가 잠들어 있었습니다.

선장은 요나를 깨우며 일어나 그의 하나님께 부르짖으라고 말합니다. 이 장면에는 의미 있는 역설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는 잠들어 있고, 이방인 선원들은 생명을 지키기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요나서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독자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는 사람이 반드시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행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하나님을 잘 모른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오히려 더 진지하게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선원들은 제비를 뽑아 폭풍이 닥친 원인을 알아내려 했습니다. 제비는 요나에게 떨어졌고,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피해 도망하는 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요나는 선원들에게 자신을 바다에 던지면 폭풍이 잦아들 것이라고 말합니다. 처음에 선원들은 그를 살리기 위해 육지로 돌아가려고 애썼지만, 바다가 더욱 거세지자 결국 요나를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바다는 잔잔해졌습니다.

선원들은 크게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서원을 합니다. 요나의 불순종으로 시작된 사건이 오히려 이방 선원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2) 큰 물고기 속에서 드린 기도

 

큰 물고기 속에서 드린 기도
큰 물고기 속에서 드린 기도

요나서 1장 17절은 하나님께서 큰 물고기를 예비하셔서 요나를 삼키게 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요나는 사흘 밤낮을 그 물고기 배 속에 있었습니다.

성경은 이 물고기의 생물학적 종류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특정 고래나 어종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요나가 죽음과도 같은 깊은 위기 속에 놓였으며, 하나님께서 그를 보존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요나서 2장에서 요나는 물고기 배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는 깊은 바다와 물결에 휩싸인 자신의 처지를 고백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셨다고 찬양합니다.

그는 자신이 죽음의 문턱에 놓였다고 느꼈지만, 하나님을 향해 다시 부르짖었습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중요한 믿음의 원리를 가르쳐 줍니다. 요나는 하나님께 불순종했지만, 하나님께 돌아와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기도가 곧바로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마술과 같은 해결책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부끄러워할 수 있습니다. 이미 너무 멀리 왔다고 생각하거나, 다시 시작하기에는 늦었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나의 이야기는 실패한 자리에서도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물고기에게 명령하셨고, 물고기는 요나를 육지에 토해 냈습니다. 요나는 다시 살아갈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에게 두 번째로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선포하라.”

요나는 다시 사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불순종을 마지막 장면으로 남겨 두지 않으셨습니다.

신앙의 교훈: 실패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기회가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3. 위기 — 니느웨가 회개하다, 그러나 요나는 기뻐하지 않았다

 

니느웨가 회개하다
니느웨가 회개하다

1) 원수의 도시에서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


요나는 두 번째 명령을 받고 니느웨로 갔습니다. 요나서 3장에 따르면 니느웨는 매우 큰 도시였으며,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큰 도시로 묘사됩니다. 이는 도시의 광대함을 강조하는 성경의 표현입니다.

요나는 그 도시에 들어가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요나가 전한 말씀은 짧았지만, 그 도시 사람들의 반응은 놀라웠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했습니다.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했습니다. 이 소식이 왕에게까지 전해지자 왕은 왕좌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굵은 베옷을 입은 뒤 재 가운데 앉았습니다.

강력한 제국의 왕이 자신을 낮추는 모습은 당시의 권력 질서를 생각할 때 매우 인상적인 장면입니다.

왕은 조서를 내려 사람과 짐승까지 금식하게 하고, 각 사람이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손에 있는 강포에서 떠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셔서 재앙을 거두실지 누가 알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금식이나 굵은 베옷 자체가 아닙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자신들의 악한 행실을 돌아보고 폭력에서 돌이키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성경에서 회개는 단순히 슬퍼하거나 후회하는 감정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잘못을 깨달았을 때 말로만 미안하다고 하는 데서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상처를 주었다면 사과하고, 부당한 행동을 했다면 바로잡으며, 피해를 입은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니느웨의 회개는 바로 이러한 삶의 변화를 생각하게 합니다.


2) 하나님께서 재앙을 거두시다


요나서 3장 10절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행위를 보셨으며,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이킨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던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고 기록합니다. 


이 장면은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을 가볍게 여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죄인이 돌이킬 때 그 회개의 가능성을 외면하지도 않으십니다.

니느웨는 강력한 도시였지만, 그들의 군사력과 성벽이 심판을 막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돌이키는 것이 이야기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뜻밖의 위기가 발생합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기뻐할 만한 변화를 경험했지만, 하나님의 선지자 요나는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요나서 4장에 따르면 요나는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용서하신 일로 크게 싫어하고 화를 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바로 그 하나님의 자비가 요나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는 니느웨가 심판받기를 원했습니다. 자신의 민족에게 해를 끼친 제국의 도시가 용서받는 것을 바라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요나의 진짜 문제가 드러납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하나님의 자비가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미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이 잘못했을 때 그가 진심으로 변화하기를 바라기보다, 그가 벌을 받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깊은 상처를 받았다면 그러한 감정이 생기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의 감정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도 돌아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용서한다는 것이 피해를 없던 일로 만들거나 악행을 무조건 받아들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피해자는 안전과 정의를 요구할 수 있으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합니다. 다만 우리는 누군가의 변화와 회복의 가능성까지 미리 닫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의 질문: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푸시는 자비는 원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베푸시는 자비는 불편하게 여기고 있지 않습니까?

 


4. 절정 — 요나의 박넝쿨과 하나님의 마지막 질문

 

요나의 박넝쿨과 하나님의 마지막 질문
요나의 박넝쿨과 하나님의 마지막 질문


요나서의 가장 깊은 장면은 니느웨의 회개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의 마음을 가르치시는 마지막 장면입니다.

요나는 니느웨 동쪽에 나가 초막을 짓고 그 도시가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니느웨가 심판받기를 기대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 위에 박넝쿨을 자라게 하셔서 그늘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요나는 그 식물로 인해 크게 기뻐했습니다.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그늘은 반가운 선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 날 하나님께서는 벌레를 보내어 그 식물을 시들게 하셨습니다. 해가 뜨자 뜨거운 동풍이 불었고, 요나는 기진맥진했습니다. 그는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겠다고 말할 만큼 괴로워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물으셨습니다. 그 식물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요나는 자신이 화를 내는 것이 옳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요나가 수고하지도 않았고 기르지도 않은 식물을 아꼈다면, 하나님께서 큰 도시 니느웨를 아끼시는 것이 어찌 이상하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요나서 4장 11절은 그 도시에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십이만여 명이나 있으며 가축도 많다고 기록합니다.

이 말씀은 요나서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 줍니다.

요나는 자신에게 그늘을 제공한 식물에는 마음을 쏟았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도시에는 자비를 베풀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식물 하나를 통해 생명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이 장면을 오늘 우리의 삶에 비추어 봅시다.

우리는 자신의 편안함과 권리를 소중하게 여깁니다. 내가 손해를 보면 속상하고, 내 계획이 무너지면 화가 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겪는 고통에는 무관심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받은 상처는 오래 기억하면서, 내가 다른 사람에게 준 상처는 쉽게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바로 그 마음을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요나서가 니느웨의 모든 악행을 가볍게 취급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다른 선지자들의 말씀을 통해서도 폭력과 압제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합니다. 요나서의 핵심은 악을 눈감아 주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가 우리가 정한 경계보다 넓다는 사실입니다.

요나서의 마지막에는 요나가 하나님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했는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열린 결말은 오늘의 독자인 우리에게 질문을 넘겨줍니다.

“너는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는 사람들을 함께 긍휼히 여길 수 있느냐?”

이 질문은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에게도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만큼이나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는 일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5. 결말 — 나훔 선지자가 선포한 니느웨의 멸망

 

니느웨의 멸망
니느웨의 멸망

1) 요나서 이후, 다시 등장하는 니느웨


요나서에서 회개하고 심판을 면한 니느웨는 역사 속에서 영원히 평화로운 도시로 남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 성경에는 나훔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나훔서는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예언서입니다.

나훔이 활동한 정확한 시기를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기원전 7세기 중후반, 니느웨가 멸망하기 전의 시기로 이해합니다. 나훔서 3장 8~10절에는 이집트의 테베가 함락된 사건이 언급되고, 니느웨의 멸망은 아직 미래의 사건으로 선포됩니다. 역사적으로 니느웨는 기원전 612년에 바벨론과 메대 세력의 공격으로 함락되었습니다. 

나훔은 요나처럼 니느웨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하지 않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폭력과 잔인함, 거짓과 약탈로 가득한 도시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선언에 집중합니다.

나훔서 3장 1절은 니느웨를 피의 성읍으로 묘사합니다. 그 도시는 거짓과 약탈로 가득했고, 사람들을 괴롭히는 폭력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앗수르 제국은 오랫동안 주변 나라들을 정복하고 압박했습니다.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으며, 유다에도 큰 위협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나훔서의 심판 선포는 단지 한 도시가 파괴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폭력적인 제국의 지배 아래 고통받던 사람들에게 주어진 정의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2) 요나와 나훔은 서로 다른 하나님을 말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두 선지자는 하나님의 서로 다른 측면을 강조합니다.
구분 요나서 나훔서
중심 도시 니느웨 니느웨
핵심 상황 악한 도시가 경고를 듣고 회개함 폭력과 악행을 저지른 도시의 심판
하나님의 역사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심 압제와 폭력을 심판하심
핵심 교훈 누구에게나 회개의 기회가 열릴 수 있음 악과 폭력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음

요나서에서는 하나님의 자비가 강조됩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악한 길에서 돌이켰을 때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거두셨습니다.

나훔서에서는 하나님의 공의가 강조됩니다. 폭력과 압제가 계속되는 도시가 마침내 심판을 받게 됩니다.

성경은 니느웨가 요나 시대의 회개 이후 어떤 과정을 거쳐 다시 악행에 빠졌는지 모든 세부 사항을 기록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두 책을 연결할 때에는 성경이 직접 말하는 내용과 역사적 해석을 구분해야 합니다. 다만 두 예언서가 함께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회개에는 의미가 있으며, 폭력과 악행에 대한 책임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3) 니느웨의 멸망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
강력한 성벽과 군사력을 갖춘 제국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니느웨는 한때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기원전 612년 함락되면서 앗수르 제국의 중심지로서 몰락했습니다.

이 역사는 힘이 강하다고 해서 영원히 안전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권력과 재산, 사회적 지위가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억누르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삶은 결국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를 바로잡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는 중요합니다.

나훔서 1장 7절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합니다. 이 말씀은 고통받는 사람이 악을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폭력적인 권력도 영원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고통받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소망을 줍니다.

오늘날에도 전쟁과 폭력, 부당한 대우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하며, 평화와 정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해야 합니다.

요나서는 우리에게 원수에게도 회개의 기회가 있음을 가르칩니다. 나훔서는 악한 행동에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가르칩니다.

이 두 말씀을 함께 읽을 때, 우리는 자비와 공의를 어느 한쪽만 선택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나의 기도 


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요나와 나훔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를 함께 묵상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피하여 도망쳤을 때에도 다시 불러 주시고, 니느웨 사람들이 악한 길에서 돌이켰을 때 심판을 거두신 주님의 자비를 기억하게 하옵소서. 동시에 폭력과 압제를 행한 니느웨가 끝내 심판을 받았다는 말씀을 통해, 악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배우게 하옵소서.

주님, 저희가 다른 사람에게는 엄격하면서 자신의 잘못에는 관대하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하옵소서. 저희에게 용서와 회복의 기회를 주시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변화할 기회를 허락하지 않으려 했던 마음이 있다면 고쳐 주옵소서. 저희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생각할 때 미움과 분노에만 머물지 않게 하시고, 진실한 회개와 변화가 이루어지기를 바랄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그러나 용서라는 이름으로 악을 외면하지도 않게 하옵소서. 폭력과 부당한 대우로 고통받는 이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말게 하시고, 약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정의와 평화를 실천하게 하옵소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인정하고 책임지게 하시며, 상처받은 사람에게는 안전과 위로와 회복의 길을 열어 주옵소서.

요나처럼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제 마음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순종을 피하지 않게 하시고, 나훔의 말씀을 통해 세상의 권력과 교만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저희가 가진 경험과 지식을 자랑하기보다 겸손히 말씀을 배우며, 신앙의 연륜이 깊어질수록 더욱 따뜻하고 넓은 마음을 갖게 하옵소서.

가정과 교회와 이웃 가운데 갈등이 있다면 서로의 말을 진심으로 듣게 하시고, 잘못을 인정할 용기와 화해를 위해 노력할 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전쟁과 폭력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지켜 주시며, 억압받는 이들에게 자유와 평화의 길이 열리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자비를 감사히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공의를 두려움과 겸손으로 배우며, 저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진실을 실천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 본문과 함께 묵상하기
- 요나서 1장 1~16절: 하나님의 명령을 피해 도망친 요나와 바다의 폭풍
- 요나서 2장 1~10절: 큰 물고기 속에서 드린 요나의 기도
- 요나서 3장 1~10절: 니느웨의 회개와 하나님의 자비
- 요나서 4장 1~11절: 박넝쿨을 통해 요나에게 가르치신 하나님의 긍휼
- 나훔서 1장 1~15절: 하나님의 공의와 고통받는 백성에게 주시는 위로
- 나훔서 2장 1~13절: 니느웨의 함락에 대한 예언
- 나훔서 3장 1~19절: 폭력과 약탈로 가득한 도시를 향한 심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