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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인물

이해하기 어려운 시아버지 유다와 며느리 다말의 이야기

by 마음과마음 2026. 10. 15.

 

이해하기 어려운 시아버지 유다와 며느리 다말의 이야기
이해하기 어려운 시아버지 유다와 며느리 다말의 이야기

 

성경에는 우리가 읽으면서 놀라고, 때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야곱의 아들 유다와 그의 며느리 다말의 이야기입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단순히 한 가정의 불행한 역사로 끝나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다말이 낳은 베레스는 다윗 왕의 조상이 되었으며, 신약성경 마태복음에는 유다와 다말, 그리고 베레스의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하게 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복잡하고 부끄러워 보이는 이야기를 성경에 남기셨을까요? 남편을 잃은 다말은 왜 그러한 결단을 내렸을까요? 유다는 자신의 잘못을 어떻게 깨달았을까요? 그리고 이 사건은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에게 어떤 신앙의 교훈을 전해 줄까요?

이 말씀은 인간의 잘못을 가볍게 여기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고, 잘못을 인정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 줍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실패와 상처가 가득한 역사 속에서도 구원의 약속을 이어 가십니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붙들고 살아야 할까요? 사람의 평판과 겉모습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진실과 책임, 회개와 소망을 붙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 창세기 38장을 따라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유다는 누구이며, 다말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유다는 야곱과 레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야곱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되었으며, 유다는 그 열두 아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유다의 후손에게서 훗날 다윗 왕이 나오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 역시 유다의 가문과 연결하여 기록합니다.

창세기 38장은 유다의 가정에서 일어난 일을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유다는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과 결혼하여 세 아들을 낳았습니다. 첫째는 엘, 둘째는 오난, 셋째는 셀라였습니다. 이후 유다는 장남 엘의 아내로 다말을 맞이하게 합니다.

• 유다: 야곱의 아들이며 다말의 시아버지입니다.
• 엘: 유다의 첫째 아들이며 다말의 첫 번째 남편입니다.
• 오난: 유다의 둘째 아들입니다.
• 셀라: 유다의 셋째 아들입니다.
• 다말: 엘의 아내였으며, 남편이 죽은 뒤에도 유다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다말이 처음부터 유다와 관계를 맺었던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말은 먼저 유다의 장남 엘과 결혼한 며느리였습니다. 남편이 죽고 가족의 보호와 미래가 불확실해지면서 그녀의 삶은 큰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성경은 다말의 부모나 어린 시절에 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기록되지 않은 배경을 임의로 만들어 해석하기보다는, 성경이 실제로 전하는 사건과 그 의미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 이야기는 한 가정에서 일어난 사건이지만, 그 안에는 가족의 책임과 약속, 여성의 불안정한 처지, 인간의 욕심과 잘못이라는 여러 문제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

2. 첫째 아들 엘의 죽음과 다말의 불행


창세기 38장 6~7절에 따르면 유다는 장남 엘에게 다말을 아내로 맞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엘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며, 하나님께서 그를 죽게 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성경은 엘이 구체적으로 어떤 악을 행했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 죄의 내용을 지나치게 추측해서는 안 됩니다.

엘의 죽음은 다말에게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고대 사회에서 남편을 잃은 여성은 경제적 보호와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자녀가 없다면 남편의 집안에서 자신의 미래를 보장받기가 더욱 어려웠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주변 사회에는 죽은 남자의 이름과 가계를 이어 주기 위해 가까운 남자 친족이 과부와 결합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훗날 신명기 25장 5~10절에는 이와 관련된 규정이 기록됩니다. 다만 창세기 38장의 사건은 모세 율법이 주어진 시기보다 앞선 이야기이므로, 당시의 관습과 이후 율법의 규정을 구별하여 이해해야 합니다. 

• 남편의 죽음으로 다말은 삶의 기반을 잃었습니다.
• 자녀가 없었기 때문에 남편의 가문을 이어 갈 문제도 남았습니다.
• 다말의 미래는 유다 가문이 어떤 책임을 다하느냐에 크게 달려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고통을 겪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어려움에 빠진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말뿐인 위로가 아닙니다. 그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고, 약속한 책임을 실제로 이행하는 행동입니다.

믿음은 예배당 안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과 이웃, 약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우리의 믿음이 나타납니다.

3. 오난의 거부와 유다의 약속 불이행


엘이 죽은 뒤 유다는 둘째 아들 오난에게 형의 아내인 다말과 결합하여 형의 대를 이어 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오난은 그 자녀가 자신의 이름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죽은 형의 이름으로 이어질 것을 알고, 형의 대를 세우는 일을 거부했습니다.

창세기 38장 8~10절은 이 행동을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이라고 기록합니다.

이 장면에서 핵심은 오난이 단순히 어떤 개인적인 행동을 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성경의 이야기 안에서 오난은 형의 대를 이어 주어야 하는 책임을 알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앞세웠습니다. 다말의 미래와 죽은 형의 가계를 돌보아야 할 책임을 외면한 것입니다.

오난도 죽은 뒤 유다는 셋째 아들 셀라를 다말에게 주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셀라가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다말에게 친정으로 돌아가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셀라가 성장한 뒤에도 유다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유다는 셀라까지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품고 있었던 것으로 본문은 설명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책임을 회피하는 인간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 오난은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거부했습니다.
• 유다는 다말에게 기다리라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 그 결과 다말은 자신의 미래를 보장받지 못한 채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약속을 쉽게 하고 지키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가족에게 한 약속, 교회에서 맡은 직분, 사회에서 지켜야 할 책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인은 말로만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고, 맡은 책임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다말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기다리라고 말하면서 정작 내가 해야 할 책임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4. 다말의 결단과 유다의 인장, 끈, 지팡이


시간이 흘러 셀라가 성장했지만 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다말은 자신이 유다 가문의 며느리로서 겪은 부당한 상황을 해결할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창세기 38장 12절 이하에는 유다의 아내가 죽은 뒤 유다가 양털을 깎으러 딤나로 올라갔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말은 유다가 그곳으로 온다는 사실을 알고 과부의 옷을 벗고 얼굴을 가린 채 길가에 앉았습니다.

유다는 다말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녀를 성매매 여성으로 생각하고 관계를 맺었으며, 그 대가로 염소 새끼를 보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다말은 그 약속의 담보로 유다의 인장과 끈과 지팡이를 요구했습니다.

당시 인장은 문서나 물건에 자신의 소유와 신원을 표시하는 데 사용될 수 있었고, 끈과 지팡이도 그 사람을 알아보는 중요한 물건이었습니다. 유다는 이 물건들을 다말에게 맡기고 떠났습니다.

이 사건을 읽을 때는 다말의 행동을 무조건 모범적인 행동이라고 해석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다말이 처한 부당한 상황과 유다의 책임 회피를 함께 보여 주지만,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모든 행동을 본받으라고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왜 이 사건을 자세히 기록했을까요?

• 다말은 유다 가문에서 자신의 미래를 보장받지 못했습니다.
• 유다는 자신이 맡은 책임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 인장과 끈과 지팡이는 훗날 유다의 책임을 확인하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교훈을 발견합니다. 아무리 자신의 잘못을 숨기려 해도 진실은 언젠가 드러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 앞에서 의로운 사람처럼 보이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아가는 일입니다.

5. 다말의 임신과 유다의 이중적인 판단


다말은 유다와의 관계로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약 석 달 뒤 다말이 임신했다는 소식이 유다에게 전해졌습니다.

유다는 다말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듣자 그녀를 끌어내어 벌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창세기 38장 24절에는 유다가 다말을 불사르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유다의 태도를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유다는 다말의 임신을 알고 그녀를 엄하게 심판하려 했지만, 정작 그 임신에 자신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면서 상대방에게는 무거운 벌을 내리려 한 것입니다.

이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 나는 다른 사람의 잘못에는 엄격하면서 나 자신의 잘못에는 관대하지 않습니까?
•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전에 내 행동부터 돌아보고 있습니까?
• 교회 안에서 직분이나 지위를 이용해 약한 사람을 부당하게 대하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7장 3절에서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는 문제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잘못을 전혀 지적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판단하기 전에 자신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돌아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유다의 행동은 타인의 잘못을 성급하게 판단하는 태도가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 줍니다. 정의를 말하려면 먼저 자신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합니다.

6. “그는 나보다 옳도다”라는 유다의 회개


다말은 자신이 끌려 나가던 상황에서 유다에게 물건들을 보내며 그 물건들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38장 25절에 따르면 다말은 유다의 인장과 끈과 지팡이를 제시했습니다. 유다는 자신이 맡겼던 물건들을 알아보았고, 다말이 임신하게 된 사정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유다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 창세기 38장 26절의 뜻을 옮긴 표현
유다는 다말이 자신보다 옳다고 인정하면서 그 이유를 자신이 셀라를 다말에게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고백은 이야기의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유다는 더 이상 다말에게만 책임을 돌릴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그로 인해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물론 이 고백이 유다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말의 모든 행동이 옳았다는 뜻도 아닙니다. 본문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유다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는 사실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단순히 잘못을 들켰을 때 당황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정확하게 인정하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않으며, 앞으로의 삶을 바꾸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 회개는 변명보다 정직한 고백을 앞세웁니다.
• 회개는 다른 사람을 탓하기 전에 자신의 책임을 살핍니다.
• 회개는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삶의 방향을 바꾸는 데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유다의 삶을 더 살펴보면, 이후 요셉을 둘러싼 가족 이야기에서도 그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창세기 44장에서 유다는 동생 베냐민을 대신하여 자신이 종이 되겠다고 나섭니다. 두 사건을 함께 읽으면 유다가 자신의 가족을 대하는 태도에서 중요한 변화를 보였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래된 잘못을 인정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진실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변화의 길이 열릴 수 있습니다.

7. 다말이 낳은 쌍둥이 베레스와 세라


다말은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두 아이의 이름은 베레스와 세라였습니다.

출산할 때 한 아이가 먼저 손을 내밀자 산파는 그 손목에 붉은 실을 묶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손을 거두는 사이 다른 아이가 먼저 태어났습니다.

먼저 태어난 아이는 베레스라고 불렸고, 손목에 붉은 실이 묶였던 아이는 세라라고 불렸습니다. 이 내용은 창세기 38장 27~3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레스라는 이름은 일반적으로 ‘터뜨리고 나옴’ 또는 ‘돌파’와 관련된 뜻으로 설명됩니다. 성경은 출생 순서가 뒤바뀐 이 사건을 기록하며 두 아이의 이름과 출생 과정을 알려 줍니다.

이 이야기에서 붉은 실은 산파가 먼저 손을 내민 아이를 구별하기 위해 묶은 표시입니다. 성경 본문이 직접 설명하지 않는 상징적 의미를 임의로 덧붙이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베레스와 세라의 출생은 유다 가문의 계보를 이해하는 중요한 연결고리입니다.

• 다말은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습니다.
• 베레스의 후손은 훗날 다윗 왕의 계보로 이어집니다.
• 신약성경은 베레스를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기록합니다.

이로써 창세기 38장의 가정사는 단순한 가족 이야기를 넘어 성경 전체의 구원 역사와 연결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든 잘못을 선한 일이라고 인정하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의 실패가 존재하는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이 중단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8. 유다와 다말의 계보는 어떻게 예수님에게 이어졌습니까?


이제 이 이야기의 핵심인 계보를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의 족보는 단순히 누가 누구의 아들이었는지를 나열하는 명단만은 아닙니다. 특히 마태복음 1장의 예수님 족보는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주어진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계보의 중요한 흐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야곱→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 유다와 다말 →
창세기 38장의 이야기 → 베레스
다말이 낳은 쌍둥이 중 한 사람

헤스론 → 람 → 암미나답 → 나손 → 살몽
룻기 4장과 마태복음 1장에 기록된 계보의 일부

보아스 → 오벳 → 이새 → 다윗
다윗 왕으로 이어지는 계보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
마태복음 1장에 기록된 메시아의 계보

이 계보는 룻기 4장 18~22절과 마태복음 1장 1~16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유다와 다말에게서 태어난 베레스의 후손을 따라 다윗 왕에게 이르는 계보를 기록하고, 마태복음은 그 계보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결합니다. 

특히 마태복음 1장 3절은 유다와 다말, 베레스와 세라의 이름을 직접 언급합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다말의 이름이 들어 있다는 사실은 이 이야기의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계보를 부끄러운 부분 없이 완벽한 사람들만의 역사로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연약함과 실패, 복잡한 가족사까지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이 족보가 모든 잘못된 행동을 인정하거나 정당화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인간의 한계와 죄가 있는 역사 속에서도 구원의 약속을 이루어 가셨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 계보를 통해 인간의 과거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할 수 없다는 교훈을 얻습니다.

9. 하나님께서는 왜 다말의 이름을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하셨을까요?


마태복음 1장에는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하는 여러 여성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말 외에도 라합과 룻, 우리야의 아내로 불리는 밧세바, 그리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나옵니다.

당시의 족보 기록에서 여성의 이름이 특별히 언급된다는 점은 독자의 관심을 끕니다. 다만 성경은 다말의 이름이 족보에 포함된 이유를 한 문장으로 직접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 의미를 생각할 때에는 본문 전체와 성경의 구원 역사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인간의 겉모습만으로 역사를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다말의 이야기는 당시 사회에서 보호받기 어려웠던 한 여성이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의 역사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완벽한 가정이나 사회적 명예만을 통해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둘째, 인간의 잘못은 책임져야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을 무효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유다의 잘못은 분명히 드러났고, 그는 자신의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그 가문에서 이어진 베레스의 계보는 다윗 왕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와 연결됩니다.

셋째, 족보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 줍니다.

성경의 중심은 인간이 얼마나 완벽 한가에만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시고, 인간의 역사 속에서 그 약속을 이어 가신다는 사실도 중요합니다.

• 실패한 사람에게도 회개와 변화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 사회적으로 약한 사람의 삶도 성경의 역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잘못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면서도, 회개와 회복의 소망을 열어 줍니다.

이것이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가 붙들 수 있는 중요한 신앙적 교훈입니다.

결론: 인간의 실패보다 크신 하나님의 은혜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는 성경 속에서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사건입니다. 이 이야기에는 한 가정의 불행과 책임 회피, 잘못된 판단,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이야기를 부끄러운 사건으로만 남겨 두지 않습니다. 다말이 낳은 베레스는 다윗 왕의 계보로 이어졌고, 마태복음은 그 계보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결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인간의 잘못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면서도, 과거의 실패가 모든 소망을 끝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배웁니다. 유다의 고백처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겸손이 필요하며, 다말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약속을 저버린 사람의 책임과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를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가정과 교회, 사회에서 지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고, 잘못을 깨달았다면 정직하게 회개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인간의 역사는 불완전하지만, 성경은 그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가 이어진다는 소망을 전합니다.

나의 기도

50년 가까이 신앙의 길을 걸어왔다고 돌아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제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었습니다. 젊은 날에는 성경 속 인물들의 잘못을 읽으며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기 전에 제 마음과 행동을 먼저 살펴야 한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를 읽으며 특별히 마음에 남는 것은 유다의 고백입니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이가 들고 신앙의 연륜이 쌓일수록 오히려 자신의 판단이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도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저 역시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지키지 못한 약속도 있었을 것이며, 다른 사람의 사정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순간도 있었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는 사실이 저의 모든 잘못을 없애 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말씀을 더 깊이 알게 될수록 겸손하게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속 인간의 부끄러운 역사까지 감추지 않으셨습니다. 그 사실은 제게 두려움과 함께 소망을 줍니다. 잘못을 숨기며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잘못을 깨달았을 때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고백하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기도합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를 통하여 저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은 쉽게 말하면서 저의 부족함은 깨닫지 못했던 교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제가 한 약속을 소중히 여기고, 맡겨진 책임을 성실하게 감당하게 하옵소서. 어려움에 놓인 사람을 외면하지 않게 하시고, 힘없는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며 사랑으로 대하게 하옵소서.

지난 50년 가까운 신앙의 여정에서 지켜 주신 은혜를 기억합니다. 남은 날들도 사람의 평가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잘못을 깨달을 때에는 변명하지 않고 회개하게 하시며, 상처받은 이에게는 위로를 전하고, 낙심한 이에게는 소망을 전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인간의 실패 속에서도 구원의 역사를 이어 가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늘도 말씀 안에서 바른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