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은 술을 마셔도 될까요? 성경 말씀과 우리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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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말씀과 우리의 삶

크리스천은 술을 마셔도 될까요? 성경 말씀과 우리의 삶

by 마음과마음 2026. 7. 10.

크리스천은 술을 마셔도 될까요? 성경 말씀과 우리의 삶
크리스천은 술을 마셔도 될까요? 성경 말씀과 우리의 삶

 

여러분. 오늘 함께 나눌 주제는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 보았을 무겁고도 실제적인 질문, 바로 크리스천은 술을 마셔도 될까요?  성경 말씀과 우리의 삶 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술은 친목 도모, 비즈니스, 혹은 슬픔과 기쁨을 나누는 자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손님입니다. 그렇다 보니 신앙생활을 하면서 세상 속 인간관계를 맺을 때, 술자리라는 환경은 성도들에게 큰 영적 부담이나 갈등으로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어떤 이들은 성경에 술을 마시지 말라는 직접적인 금령이 없다고 말하며 자유를 주장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술이 영적 타락의 지름길이라며 절대적인 금주를 강조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우리 크리스천들이 붙잡아야 할 유일한 기준은 세상의 문화나 개인의 편안함이 아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성경은 단순히 '마셔라, 마시지 말라'는 단편적인 이분법을 넘어, 우리가 육신을 입고 이 땅을 살아갈 때 영적인 품격과 거룩함을 어떻게 지켜내야 하는지 깊이 있는 지혜를 제공합니다. 본 글을 통해 성경 속 믿음의 선진들이 가졌던 태도를 배우고, 술에 대한 성경적 기준을 명확히 정립함으로써, 우리의 신앙이 한 단계 더 성숙해지고 성령님의 세밀한 감동을 체험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 성경이 바라보는 '포도주와 독주'의 두 가지 시선


성경을 읽다 보면 술(특히 포도주)에 대해 긍정적으로 묘사된 구절과 매우 부정적으로 경고하는 구절이 동시에 존재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는 성경이 술 자체의 물질적 존재보다, 그것을 대하는 인간의 마음가짐과 영적 상태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축복과 기쁨의 상징으로서의 포도주: 고대 이스라엘 기후와 문화 속에서 포도주는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니라 음료이자, 하나님이 주신 풍요로운 땅의 축복을 상징했습니다.

● 시편 104편 15절: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하게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

  방탕과 패망으로 이끄는 유혹으로서의 독주: 반면, 성경은 술에 취해 이성을 잃고 영적인 분별력을 상실하는 행위에 대해 엄격하게 경고합니다.

  잠언 20장 1절: "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이에 미혹되는 자마다 지혜가 없느니라."

쉽게 푸는 성경 용어:

  포도주(葡萄酒): 포도를 발효시켜 만든 술로, 당시 식수가 부족했던 중동 지역에서는 갈증을 해소하고 음식을 소화시키는 음료의 역할도 겸했습니다.


  독주(毒酒): 알코올 도수가 매우 높은 강한 술을 뜻하며, 성경에서는 주로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방탕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문맥에서 자주 쓰입니다.

 

2. 성경 속 성인들에게 배우는 영적 절제와 거룩함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았던 성경 속 인물들은 술과 세상의 즐거움 앞에서 자신을 어떻게 구별하였을까요? 이들의 삶을 통해 우리가 본받아야 할 신앙의 태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나실인 삼손과 세례 요한의 절대적 구별: 하나님께 바쳐진 자를 뜻하는 '나실인'들은 평생, 혹은 일정 기간 동안 포도주와 독주를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사사기 속 삼손과 신약의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께 구별된 자로서 술을 멀리하며 영적인 순결함을 유지했습니다.

  다니엘의 뜻을 정한 믿음: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던 다니엘은 왕이 내리는 진미와 포도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다니엘 1장 8절: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다니엘은 세상의 권력과 문화가 주는 달콤한 유혹(포도주)을 거절함으로써,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겠다는 신앙적 절개를 증명했습니다.

  레갑 족속의 순종과 축복: 예레미야서에 등장하는 레갑 족속은 조상의 명령에 따라 대를 이어 포도주를 마시지 않고 장막에 거하며 거룩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풍조에 물들지 않고 절제를 지킨 이들을 크게 칭찬하시며 영원한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3. 신약 성경이 강조하는 '치명적인 취함'에 대한 경고

 

구약을 넘어 신약 시대의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은 더욱 직접적이고 강력한 영적 지침을 내립니다. 술을 마시는 행위 자체가 율법적인 죄냐 아니냐를 따지기 전에, 그것이 영혼에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력을 보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과 대조되는 술 취함: 바울은 술에 취하는 것과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을 정반대의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술은 인간의 신경을 마비시키고 육신의 정욕을 자극하여 방탕(방향을 잃고 무절제하게 행동함)으로 이끌지만, 성령님은 우리의 영을 깨우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위험: 고린도전서에서는 반복적으로 술에 취해 살아가는 삶의 위험성을 지적합니다.

  고린도전서 6장 10절: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여기서 '술 취하는 자'는 어쩌다 실수한 마심을 넘어, 술에 지배당하고 중독되어 영적 통제권을 상실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4.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주어진 '자유'의 개념을 아주 깊이 있게 다루었습니다. 크리스천은 구약의 율법적인 조항(이것은 먹지 말라, 저것은 마시지 말라)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자유함을 얻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 자유를 사용하는 데에는 위대한 영적 원리가 따릅니다.

  유익과 덕을 세우는 기준: 내 육신이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내 영혼과 교회 공동체에 모두 이로운 것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0장 23절: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영적 통제권의 유지: 술 한 잔을 마시는 것이 당장 지옥에 가는 죄는 아닐지라도, 그것이 나를 지배하게 놔둔다면 이미 자유를 잃은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2절: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술을 마시다 보면 자제력을 잃기 쉽고, 술 기운에 얽매이게 됩니다. 진정한 크리스천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의 통제 아래에만 있어야 합니다.


5. 이웃의 실족을 막는 성숙한 '사랑의 원리'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술을 마셔도 되느냐는 질문에 답할 때, '나 혼자 괜찮으면 그만'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은 성숙한 성도의 자세가 아닙니다. 나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신앙에 어떤 영향을 줄지 고려해야 합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위한 배려: 내가 믿음이 강해서 술을 통제할 수 있다고 한들, 교회에 막 발을 들인 초신자나 믿음이 연약한 성도가 나의 술 마시는 모습을 보고 실족(상처를 입고 신앙에서 멀어짐)한다면, 그것은 형제에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21절: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선택: 우리의 모든 삶의 목적은 나의 만족이 아닌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데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내가 술잔을 드는 모습이 과연 불신자들에게 전도의 문을 열어줄지,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기독교에 대한 세상의 비난을 살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6. 한국 교회 역사와 환경 속에서의 금주 전통


마지막으로 우리가 몸담고 있는 한국 교회의 특수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 세계 기독교 중에서도 특히 한국 교회는 교단과 교파를 막론하고 성도들에게 '금주(술을 마시지 않음)'를 강력하게 권장해 왔습니다. 여기에는 깊은 역사적, 선교적 이유가 있습니다.

  초기 선교사들의 안타까움과 영적 결단: 구한말 조선 땅에 들어온 언더우드, 아펜젤러 등 초기 선교사들이 보기에 당시 조선 사회는 음주와 도박, 흡연으로 인해 가정과 경제가 파탄 난 상태였습니다. 선교사들은 이 땅의 백성들을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구원하기 위해 교회 안에서 술을 엄격히 금지하는 전통을 세웠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표지(Sign): 한국 사회에서 "저는 교회 다녀서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라는 고백은, 단순히 음료를 거절하는 것을 넘어 "나는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를 선포하는 가장 강력하고 명확한 신앙 고백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문화적 예의와 직분자의 자격: 성경은 교회의 리더(감독, 집사)를 세울 때 '술을 즐기지 아니하는 자'여야 한다고 명시합니다(디모데전서 3장 3절). 한국 교회의 금주 전통은 성도들이 언제나 깨어 기도하며 영적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보호막 역할을 해왔습니다.

 

 

결 론

크리스천이 꼭 기억해야 할 원칙 4가지

 

  절제의 원칙 조금 마시는 것과 취하는 것은 다릅니다. 취할 정도로 마시는 것은 명백한 죄입니다

 

  다른 형제를 위한 배려 “네 형제로 실족하게 하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라”(로마서 14:21) → 내가 술 마시는 것이 교회 형제자매, 특히 연약한 믿음의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면 자제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자기 통제와 양심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한 잔도 안 마시는 것이 편안하고, 어떤 사람은 적당히 즐기는 것이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마음입니다.

 

  현대 사회적 상황 오늘날 술은 중독성이 강하고, 사회적 문제(음주운전, 가정폭력, 건강 문제)를 많이 일으킵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금주를 권장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얻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나의 육체적 쾌락이나 세상과의 타협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유익을 위해 스스로 제한할 줄 아는 것이 참된 복음의 능력입니다. 술에서 오는 잠깐의 즐거움보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주어지는 깊은 영적 평안을 선택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다짐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In the world, but not of the world) 거룩한 천국 백성입니다. 세상 친구들과 동료들이 술 기운을 빌려 외로움을 달래고 스트레스를 풀 때, 우리 크리스천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함으로, 그리고 보혜사 성령님의 위로하심을 입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오늘 이후로 우리의 마음 중심에 "뜻을 정하였던 다니엘"과 같은 거룩한 결단이 있기를 원합니다. 내 육신의 자유보다 형제의 영혼을 더 귀하게 여기며, 술잔을 내려놓는 작은 절제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기독교인의 고결함을 세상에 증거하는 신실한 주의 자녀가 되기로 다짐합시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께서 날마다 이길 힘과 성령의 충만함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술은 죄가 아니지만, 술에 지배당하는 것은 죄다. 자유와 사랑과 절제 안에서 지혜롭게 결정하라.”